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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5회 ]
 
2003년 05월 02일 발간
기행문
하인리히 뵐과 차 한잔 - 정인모(14회) 부산대독어교육과 교수
 
독일의본Bonn 방향으로가는1 8번전차를타고서보른하임지역의메르텐 역에내렸을때, 넓은초원을배경으로서있는초라하기그지없었다.
하지만 늘부산같다고생각했던쾰른시를오랜만에벗어나한적한곳에내리니맘이 한결편안함을느꼈다.
이제나도나이를먹어서일까? 청소기로집안구석구 석의먼지를성실하게빨아들이는데열중인어느한부인에게염치불구하고 하인리히뵐의묘를물으니친절하게설명해준다.
15분쯤잰걸음이인도하는 곳은성당을중심으로상점과주택들이짜임새있게정돈된아담한동네보른 하임-메르텐이다.
그속에서뵐이잠든알트프리드호프(구공동묘지)까지는 걸어서5분정도.
묘지입구에들어서려니갑자기먹구름이몰려와빗방울까 지뿌려대는게아닌가.
독일에서절대믿지못할것이날씨라고생각해서아 침에햇볕이쨍해도항상우산을지니고다녔는데, 하필이날은안들고왔으 니, 한방울의비도거부하는내체질이어떻게감당할지걱정이었다.
다행이 조금있다그치는비라서, 프리드호프카펠레(예배당)에서나와뵐의묘를찾 기시작했다.
언젠가는그의묘를방문해야겠다는생각이, 어떤의무감에서인 지, 아니면뵐전공자로서가져야할최소한의예의때문인지알수없지만, 정작뵐의묘앞에섰을때왠지맘이숙연해짐을느꼈다.
그의삶과작품세 계가 다시 한번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면서묘비에 쓰인‘Heinrich Boll, 1 9 1 7 - 1 9 8 5 ’이눈에들어온다.
무덤을볼때면, 각자의고유한삶을살다갈유한자인인간을생각하게된다.
태어난해는정해졌지만, 생을마감하는때는언제인지알수없다.
하지만 영생을허락하셔서덧없는이세상에그치지않고, 영원한본향을향할소망을 주신그분께감사하지않을수가없다.
구원을선물로주신그분께찬양드리 지않을수없다.
알파와오메가가되속, 영원부터영원까지계신창조주앞 에인간의삶은덧업속보잘것없음을인식하며, 이세상사는날까지자신의 삶을보다진지하고의미있게보내야겠다는생각이든다.
이런저런생각에잠겨얼마만큼의시간이흘렀을까, 그동네살고있는어느 중년부부가옆을지나가기에묘를배경으로한사진한장을부탁했다.
몇마 디의얘기를나눈후그분들짐이바로묘지근처라차한잔초대하고싶단다.
결국그곳에서그분들과얘기하면서하인리히뵐의셋째아들레네뵐이바로 인근에어머니를모시고살고있다는말을들었고, 그분들이손수그집까지 안내해주었다.
‘쾰른출신의착한사람’이라는꼬리표를늘달고다녔던하 인리히뵐처럼그의아들레네씨도수수한차림새가소탈한면모를그대로보 여주고있었다.
그의부인이대접하는슈바르츠테를마시며, 이런저런얘기 를나누었다.
특히최근관심을끌고있는뵐의유고작에대해, 또향후뵐전 집발간등에대해많은대화를나누었다.
레네씨의어머니이자하인리히뵐 의부인인아네마리뵐은같은집2층에계셨지만, 92세의고령이라거동이 힘들단다.
남편하인리히뵐이전쟁중에도거의매일보낸편지의주인공이 자, 전쟁직후첫째아들을잃고어려운가계를담당하며레알슐레(실업학교) 교사로서, 번역가로서, 또한작가의아내로삶을살아온안네마리뵐.
심지어 7 0년대뵐이‘카타리나블룸의잃어버린명예’ 를쓴후테러리스트의정신적 지주로지목되어가택수색을몇번이나당한것을감수해야만했던그녀였다.
벨러스호프, 브링크만등이모두쾰른출신작가이지만, 1972년노벨문학상 수상자인하인리히뵐은쾰른에서나서, 생활하다쾰른에서죽었을뿐아니라, 그의작품거의다가쾰른을무대로하고있기때문에명실상부한쾰른인리라 할수있다.
제임스조이스가더블린과, 도스토예프스키가페테스부르크, 토 마스만이뤼벡과관계있드시뵐의문학은쾰른을떠나서는생각할수없다.
돔Dom, 쾰쉬Kolsch, 라인R h e i n이쾰른의대명사라면여기에하인리히뵐 을더하는것이지나친욕심일까? 뵐이1 9 5 0년대성장일로에있는독일을떠나잠시아일랜드에서몇년동안 지내기는했지만(이곳에서쓴일기가‘아일랜드일기’ 이다) 쾰른은뵐의영원 한고향이었던것이다.
뵐자신도쾰른이대도시인것은사실이지만항상편안 함을느낄수있다라고친숙함을피력한바있다.
뵐이살던집과학교는지금전쟁중에파괴되어사라지고없지만, 그의흔적 은쾰른곳곳에서발견할수있다.
토이토부르거거리에서태어난그는어린 시절을라더베르크의크로이츠나허거리와바이엔탈의쉴러거리에서보냈고, 전쟁직후에는쾰른대학에서중단했던독문학을공부하였다.
그후경제적 어려움이있었지만, 53년발표된‘그리고아무말도하지않았다’ 로세상에 알려지기시작하면서전문작가의길로들어서게된다.
약7년전에쾰른에있던하인리히뵐슈티프퉁(재단)이‘뵐에게서지방색을벗 기고세계적작가로부상시키기위해’베를린으로옮겨갔지만, 뵐아쉽(문서 국)은여전히루돌프광장근처안트베르펜너거리에있고(뵐의조카빅토르 뵐이그곳의소장으로일하고있다), 또돔뒤쪽에는뵐을기념하기위한하인 리히뵐광장이있다.
‘예술과삶의일치’를부르짖으며, 항상약자편에서서대변인역할을했던 하인리히뵐은,인간의진정한자유와건강한상식을앗아가는전쟁의잔악함 을고발하고, 온통폐허가된전쟁직후의폐허속에서도위로와희망을보여 주려고했으며, 전후경제성장과재건의구호가사회를뒤덮고있을때그화 려한구호속에사라져가는인간성을강조했던휴머니스트였다.
그는또한 68 학생운동, 반핵운동에도적극적이었고국제펜클럽회장때에는솔제니친 등핍박받는작가들의대변인역할을하기도했다.
독실한가톨릭집안을배경으로성장한뵐은7 0년대중반가톨릭교회에서정 식으로탈퇴를선언하긴하지만, 그이작품중심에는기독교적정신을짙게깔 고있어, 현대기독교작가로서의한자리를차지한다.
다시말해그의문학 의핵심은‘네이웃을네몸과같이사랑하라’는성경말씀에기초하고있으며, 소위‘기독교적휴머니즘’ 을표방하고있다.
뵐에게는하나님이주신인간의 존엄성은지켜져야하며, 그인간성이에어떠한것도지배적인위치에있을 수가없다.
특히그는독일가톨릭종교가정치와의결탁을도모하고순수한 기독교적정신을상실하고있다는데대해비판의화살을늦추지않고있는데, 그가행한가톨릭비판은복음에충실하지못한제도권교회와종교지도자들 에대한것으로, 진정한하나님사랑의실천적기구로서의의미를상실한데대 한안타까움과, 이것의회복에대한바램이담겨있는것이다.
선한사마리아 인비유에서보듯, 제도화되고경직된체제속에서는진정한복음의싹이틀 수없고, 하나님의영이오직살아있는말씀으로의역사만이오직형제사랑을 실천할수있다는것이다.
레네뵐과의차한잔을한후역시노벨수상작가귄터그라스의‘게걸음으로 Im Krebsgang’독서회가있는쾰른시내로가는전차에몸을실었다.
이날 은현대독일문학의분위기에흠뻑젖을수있었던잊지못할날이었다.
하인리히 뵐과 차 한잔 “독실한가톨릭집안을배경으로성장한뵐은7 0년대중반 가톨릭교회에서정식으로탈퇴를선언하긴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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